스완-에세이(소근소근)

인생은 서핑으로 함께......

골디오션스토리 2021. 5. 2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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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한가득 내리는 날, 해변을 하염없이 걸었다. 먼지 한 점 없는 하늘에 햇살이 가득 내린다. 일상을 짓누르는 고민을 극복하려고 걸었다. 최종 불합격, 2년 연속 도전한 크리에이티브 도전기’(가칭)의 결과는 나를 끝없는 추락으로 이끌었다. 지원서도 꼼꼼히 준비하고 발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2대 1의대1 경쟁률을 이겨내지 못하고 최종 심사에서 선발되지 못한 것이다. 서류심사 통과는 나의 제안서가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지만, 면접 심사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결국 전문가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해 얻어낸 결과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해변을 걸었다. 내려가야 할 때, 나는 누구 보다 빨리 내려 가려한다.. 시간을 가치 있게 써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요즘,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해 있는 시간도 아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바닥을 찍고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기 시작한다. 먼저, ‘가치란 무엇이며,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완전히 엉켜버린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가는 느낌으로......

 

대표님이 떨어진 것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하셨다. 아마 본인이 더 아쉬울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실망한 것으로 보였나 보다. 그만큼 나는 선정에 진심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선정되어서 일정까지 다 짜 놓은 나로선 맥 빠지는 일이지만 사장님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텐데, 내가 애쓴 것을 알아서인지,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사장님의 그런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맥빠져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갔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다시 기획과 아이디어 구상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기획서와 일정표를 작성하고 자체로 제작할 수 있는 것들을 사장님과 조율했다. 어느 날 눈앞에 보이는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뭔가요?”

 

라고 물었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내가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기 안타까웠나 하는 생각으로 나쁜 일이 있으면 얼굴에 다 드러나는 단순한 사람이란 게 부끄러웠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고 얼른 텐션 올리세요.”

 

물질에 좌지우지되는 나의 모습, 속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적이다. 불과 몇 주 동안 고생하고 마음 쓰며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다 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창피하고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지,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처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받아서 퇴근했다. 다음에는 이렇게 금일봉을 받는 것이 아닌 당당히 웃으면서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오기, 그리고 대표님의 배려에 대한 감사함으로 집 앞 특수부위 전문점을 방문했다. 특수부위 전문점이지만 나는 무조건 항정살 하나만 먹는다. 내가 돼지고기의 특수부위를 먹는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일주일에 꼭 한번은 회식이 있었다. 업무가 끝나고 부서원들과 함께하는 공식적인 회식은 아니었다. 선임들끼리 퇴근 후에 한 잔씩 하는 비공식 파티였다. 허름한 술집에서 팀장님이 사주는 생고기는 낮 동안 긴장했던 나의 마음과 몸의 위로가 되었다.

사장님 고기 주세요.”

 

손바닥만 한 스테인리스 접시에 특수부위라고 불리는 고기를 달궈진 쇠판에 올리면 돼지 향이 나는 빗소리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구워진다. 퇴근하고 저녁 시간인 데다가 일분일초가 긴장의 연속이었던 때의 나에게 매번,

 

미래의 팀장 천 팀장!”

이라고 격려해 주시던 목소리와 분위기가 좋아서 매번 회식에 따라 왔는지도 모른다. 엄청 불편하고 어려운 자리였지만 받아주는 술도 넙죽넙죽 먹는 주량, 나의 주량은 그때 성장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특수부위를 좋아하시던 팀장님은 퇴사하셨다. 독립해서 자영업자이자 사장님이 되신 것이다. 가끔 추억팔이로 특수부위를 주문하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 하고 묻게 된다. 가게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에는 파도타는 장면이 있다. 파도타기 해본 적 있는가? 새로운 걸 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상상의 여지가 있어서가 아닐까. 일단 새롭다는 점이 가장 즐겁다. 매번 새로운 파도를 완벽하게 타내는 나의 모습, 부서지는 파도를 요리조리 헤쳐나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도는 기분이다. 패들링을 하기 위해 보드에 엎드려 앞으로 나아간다. 양팔은 하염없이 물을 젓는다. 파도가 치면 내가 원하는 파도가 올때까지 기다린다. 내가 선택한 파도와 함께 보드 위에서 일어나 균형을 잡으며 해안가로 나아간다. 나의 인생도 서핑과 같다. 내가 가진 작은 아이디어 위에서 하염없이 팔을 휘젓는다. 가끔은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팔을 젓는다. 어느 성인은 인생의 때를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마음에 드는 파도를 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보드 위에서 흔들다 물속으로 처박혀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게 한다. 서핑은 그야말로 새롭고, 재미있다. 서핑은 파도를 타는 스포츠다. 6주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과 즐거웠던 순간도 서핑과 같다. 꼭 타고 싶었던 파도는 나를 배신하고 나를 물속으로 빠뜨렸다. 하지만 무심한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더 큰 파도로 나에게 바닷물을 강제 시음하게 한다. 그렇게 오르고 내리는 순간들이 있기에 인생사는 즐거움도 살아가는 행복함도 깊어지는 것이다. 내 눈앞에 파도 타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파도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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